파리 리용역에서 렌트카로 파리를 떠난다. 

짐을 싣고, 아이패드를 켜서 TomTom 네비를 작동시킨 후 드디어 출발했다. 

파리의 도로는 정신없다. 

이상하게 생긴 샛길도 있고, 역주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길도 있다. 어디가 어딘지 알 겨를도 없다. 

그냥 네비가 시키는대로 그저 사고없이 파리를 벗어나게 해주세요 기도하면서 운전을 하다보니, 어느덧 파리를 벗어났다. 


고속도로가 나오고, exit으로 빠지고, 여러 마을들을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고호의 그림에서 본 기억이 있는 교회당도 나오고, 그 앞을 지나서 고호의 집이 있는 곳이라고 짐작되는 곳에 도착했다.  

Auvers sur Oise.


별 특별한 표지판도 없고, 안내소도 없다. 주차장도 없다. 

눈치를 보아가며 좁은 도로 옆에 평행주차를 했다. 

몇몇 관광객들에게 물어서야 고호가 마지막 8개월을 묵었다는 여인숙을 찾았다. 



고호의 방까지 들어가 구경하는 것은 우리 부부의 취향에 맞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별달리 볼 것이 없어보이는 마당에 이거라도 구경하자 하며 입장권을 사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 뒤로 갑자기 프랑스 꼬마애들 수십명이 들이닥친다. 

녀석들을 데리고 온 여선생은 볼이 불깃불깃한 촌뜨기 중년부인처럼 보였는데, 먼저 도착하여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부부를 보더니 “we are group”이라며 영어로 크게 소리친다. 

그리고는, 양해를 받기도 전에 우리를 앞질러 입장공간을 차지한다. 


여기선 다들 이렇게 사나보다. 

관리직원들은 그게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그 여선생은 그 후 꼬마들을 대기실 한가운데 앉혀놓고 여러가지 설명을 하면서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30분이 넘도록 시끄러운 프랑스말로 떠들어 대는 걸 참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려면 우리를 먼저 보내든지. 

관리직원에게 항의를 했지만, 그들은 더 기다려달라는 말만 계속한다. 

고호의 방을 꼭 보려했던 것도 아닌 판에 이런 무례함에 점점 부아가 치밀어, 끝내 우리 부부는 더 기다리지 못하고 입장권을 refund한 후 그 곳을 나와 버렸다. 

늙어가면서 점점 까다로와지는 걸까.  


오베르 쉬르 오와즈의 길가에는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숙 밖에 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듯한 마을의 모습이 그나마 위안이 되긴 한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지방 도시들에 가보니 프랑스 지방 도시들도 별 큰 변화없이 대부분 옛날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마을 뒷쪽 골목을 걷는 맛은 있다. 마치 고호가 걸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골목길을 따라가다보면 고호가 그린 교회당이 나온다. 

건물 그 자체로 그림같다. 

오래된 벽면이 참 소박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을 준다.



이런 건물이 있으니 그런 그림이 나오지... ㅎㅎ 

이젠 좋은 그림 많이 나오겠네? ...... 수채화 초보인 아내를 괴롭히는 건 늘 재미있다.  


고호의 그림과 같은 각도로 교회당을 다시 찍어본다. 

(고호의 그림에도 같은 위치에 사람이 서있다. 그래서 아내더러 그 역할을 부탁했더니 뒷모습 모델은 순순히 허락한다.)


  


교회당 앞에는 정성껏 꾸미고 유지해온 것으로 보이는 동상이 하나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고호의 동상이 아니라 Daubigny라는 화가의 동상이다. 

이름을 들은 적이 있긴 한데, 아마도 이 마을에서 태어난 화가인지...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가장 잘 만들어진 동상이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걸 고호의 동상이라고 착각하신단다)


교회당 뒷편 오르막길을 한참 돌아가니, 지평선이 닿도록 넓은 밀밭이 펼쳐진다. 

저 밀밭 어느 구석에선가 고호가 머리에 총을 쏘았다지.. 



그 바로 옆에 공동묘지가 있다. 

공동묘지에 들어가면 고호의 무덤을 쉽게 찾을 수 있으려니 했는데, 묘지 안에는 관광객을 위한 아무런 표지도 없다. 

약간은 이른 오전이라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서 우리 능력으로만 무덤을 찾아야 했다. 

저쪽 어느 무덤에 몇 사람이 몰려 있기에 그 곳인가 하여 다가가 보았더니, 그들은 새로 판 무덤에 참배하러 온 프랑스인들이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금방 장례를 치른 듯한 사람들에게 “고호의 무덤이 어느 거예요?”라고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도 없고... ㅎㅎ 


공동묘지를 한참 돌아서야, 북쪽 담벼락 밑에 만들어진 작은 무덤 두 개를 발견했다. 

빈센트와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 작은 글씨로 적힌 그들의 이름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푸른 잎의 넝굴이 무덤 전체를 덮고 있을 뿐. 위대한 화가의 무덤이 왜 이렇게까지 방치되고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나중에도 점점 느낀 것이지만, 프랑스는 네덜란드 태생인 고호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고호가 중요한 시간을 보낸 아를에서조차도 관광객으로서 고호의 자취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이 파리 튈르리공원 바로 앞에다가 오랑제리 미술관을 따로 짓고 몇개 안되는 모네의 수련 연작 작품을 모셔둔 것이나, 지베르니 모네의 집 근처에 요란한 시설과 흔적을 남기면서까지 모네에 관하여 호들갑 떠는 것에 비한다면, 고호는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고호는 외국 관광객들에게서만 관심을 받고있을 뿐인가. 

고호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의 원인도 사실은 이 점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고호는 이국 땅인 프랑스에 와서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살아있는 동안 화가로서의 대접을 전혀 누려보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했잖은가. 

그런데, 정작 그 프랑스는 지금까지도 그를 소홀하게 취급하는 셈이다. 

고호의 이름 때문에 벌어들이는 관광수입만도 만만찮을텐데... 나그네인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아내와 나는 고호의 무덤 앞에서 더욱 숙연해졌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밀밭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우리는 아무 근거없는 상상력을 동원하며 고호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호가 왜 프랑스에 왔을지, 

그가 왜 아를과 파리를 왔다갔다 했는지, 

다른 인상주의 화가와도 상당히 구별되는 색채와 필치를 가진 고호의 그림이 당시에 인기를 얻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친분이 있던 화가들이 "아를로 오라"는 고호의 요청을 왜 모두 무시했을지, 

그가 동생 테오와 그렇게 가깝게 지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고호가 왜 자살을 했을지, 

그리고 한달후 동생 테오까지 자살을 한 이유는 또 무엇일지... 


그 동네를 그렇게 덧없이 떠나기가 싫었다. 

고호와 그의 동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주차해 놓은 길가에 아무 표시가 없는 작은 공원이 있어서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들어갔다. 

공원 구석 나무 그늘 밑에 비쩍 마른 사람 동상이 생뚱맞게 놓여있다.

그게 고호란다. 그리고 그게 고호 공원이란다. 


인근 베이커리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고호 공원 내의 그늘진 벤치에 앉았다. 

미국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노부부가 저 옆 다른 벤치에 앉아서 우리처럼 샌드위치를 먹는다. 

건강하고 행복해 보인다.

십여년 후, 우리도 저 부부처럼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내가 영원한 잠에 빠지기 전까지 프랑스 여행은 이것으로 마지막일까...

 

이른 오후를 고호 공원에서 그렇게 보내고서야, 우리는 지베르니를 향해 출발했다. 


Auvers sur Oise에 가면, 두어시간쯤 천천히 동네를 산책할 생각을 하는 게 좋다. 

고호의 여인숙, 골목길, 교회, 밀밭, 공동묘지까지 그렇게 가깝지는 않기 때문이다. 

관광목적으로만 바쁘게 돌아보고 갈 예정이라면, 볼 꺼리가 상대적으로 적다.  


Posted by foto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