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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와 가벼움

아침마다 배변하는 게 일과였는데, 지난 일요일에는 어찌저찌 하다보니 배변을 건너뛰었다. 월요일 아침에도 배변할 생각이 나지 않는게 뭔가 찜찜했다. 오후 늦게서야 요 며칠간 물을 몹시 적게 먹었다는게 기억났다. 그리고보니 요즘 살을 약간 빼야겠다 싶어서 식사량을 전반적으로 줄이고 있었다. 그러니 배변도 거의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물이라도 적당량 이상은 마셨어야 하는데.. 5년전 항암치료 과정에서 극심한 변비의 부작용으로 분변매복 증세가 생겨서, 서너차례 병원으로 달려가 (의사가 항문에 손가락을 넣으서 굳은 변을 꺼내는) 수지배변이라는 큰 곤욕을 치른 일이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그런 경우에는 관장약을 넣으면 변은 여전히 나오지 않은채 뱃속에서 더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견딜 수 없게 ..

살아가는길 2026.08.26

밤바다

요즘 동풍이 불면서 동해안은 영서지방이나 수도권보다 기온이 5 내지 6도 가량 낮다.열대야도 없어진 덕분에 상대적으로 부요해진 느낌까지 든다. 밤이 되자 기온이 조금 더 떨어졌다. 23도. 아내와 강원도립대학의 교내를 산책하다가, 내친 김에 해변까지 걷기로 했다. 바다가 가까워져 오자 파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요즘, 해수욕이 금지될 정도로 파고가 높다던데, 밤에는 어떻게 보일지 약간 궁금해졌다. 밤에 보는 바다는 낮과 사뭇 다르다.먼 바다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잔뜩 흐린 날이라 달도 구름도 없다. 파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먼 밤바다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흑암같은 바다 속에서 위장하며 다가오던 파도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삼각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이내 꼭대기에서 하얀 물보..

헌인릉

내게는 언제나 빈 공간과 빈 시간이 필요하다. 결혼 직후에야 그걸 처음으로 느꼈다. 결혼하면 24시간 내내 아내와 붙어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 답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그래서 결혼 초에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마다 나 혼자 하루종일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합의했었다. 거의 40년전 일이다. 오늘 모처럼 내게 갑자기 빈 시간이 주어졌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바로 여기다. 집에서 멀지 않은 헌인릉. 고등학교시절 송충이 잡는 행사로 몇번 왔던 곳인데, 커서는 한번도 와보지 못했다. 차에서 내리니 햇볕이 제법 따갑다. 아직은 꽤나 여전한 봄볕이지만, 며칠 전보다는 조금 더 뜨겁게 느껴진다. 65세 이상 노인은 경로우대."나는 과연 노인일까."내 몸과 마음 속 어디에서도 "그래 노인이야"라고 인정하는 부분이..

하룻길 2026.05.08

남산

오늘 코스: 회현역 - 남산도서관 - 하늘숲길 - 남산타워 - 목멱산방 - 명동 회현역에서 출발한다. 회현역 4번출구에서 서울역 방면으로 50m가량 걷다보면 위로 보이는 고가도로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걸 타고 올라가 도로를 따라 남산 방면으로 향한다. 곧 이어 백범광장공원, 안중근의사기념관, 그리고 남산도서관이 나오고, 남산도서관을 지나자마자 하늘숲길이 시작된다. 오늘은 잠시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들렀다. 동행한 친구와 함께 젊은 시절 안중근의사의 마음을 되짚어보다가, 문득 친구가 고백하듯 이야기한다."나는 20대에 얼마나 철없이 살았던지 몰라."모두가 그렇다. 20대 그 젊은 시절에는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뭔가를 얻기 위해서 힘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안중근 의사처럼 나라를 위해 내 ..

하룻길 2026.04.08

명동 일대

오늘 코스는, 명동 함흥면옥 - 회현동 카페 - 서울로 7017> 명동 함흥면옥은 우리 부부에게 있어 의미가 깊은 식당이다. 1986년 5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이기 때문이다. 남녀가 처음 만나 식사할 때 피해야 할 음식이 짜장면과 함흥냉면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함흥냉면이었고, 그것도 이 식당의 냉면을 제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미색의 검소한 블라우스를 입은 아가씨가 마음에 와닿아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고, 마침 점심 때이기도 했다. 명동에 함흥냉면 맛있게 하는 식당이 있는데 어떤가고 물어봤던 건데, 이 아가씨가 선뜻 좋다고 답변하는 바람에 여기로 갔던 것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아가씨가 평소 엄마와 함께 자주 갔던..

하룻길 2026.04.07

청록뜰 / 박두진 문학관

안성에 있는 산책로. 금광호수를 끼고 있어서 "금광호수 둘레길"의 일부이기도 하고, 또한 시인 박두진을 기리기 위해 "박두진 문학길"이라고도 불린다. 산책길 곳곳에 박두진의 싯귀도 걸려 있고, 호수변에 박두진의 호를 딴 "혜산정"이라는 정자도 있다. 하늘길 전망대라는 커다란 탑도 있어서 어렵지 않게 전망대로 올라가 금광호를 내려다볼 수도 있어 좋았다. 전망대를 내려오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부부의 대화가 들려온다. 남편은 '오늘 코스 참 잘 정하지 않았냐'고 자화자찬하면서 아내의 칭찬을 기대하니, 아내는 말을 요리조리 돌리면서 섣불리 칭찬을 남발하지 않으려 한다. 부부의 장난스런 수작질을 들으면서, 나 혼자 낄낄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보다 빠른 속도로 내 앞을 지나가는데, 그 중년 부부는 손을 꼭 붙..

하룻길 2026.04.03

연어 야채 에어프라이어

코스트코에서 연어를 사왔다.일부는 회로 먹고, 나머지 중의 일부분은 뭔가 다른 것으로 해먹고 싶었다.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그래도 만만해보이는 연어 요리 레시피를 찾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D4TtUUOw5A&list=PLX5LcTxy-sRb7gNF8DJBX9eQiHbqRvB57&index=1&t=192s 집에 없는 재료나 양념은 대충 빼고, 좀 힘들어보이는 것도 건너뛰고, 나름대로 해보았다. 그래서, 원작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막상 시작해보니, 브로컬리는 너무 일찍 넣어서 타버린 부분도 많지만, 첫 작품치고는 그런대로 괜찮다. 보기에도 좋지만, 맛도 꽤 좋다. 건강식인데다가. 역시 남자가 하기에는 에어프라이어 요리가 제일 만만하다. 간만에 아내를 감동시..

밥묵자 2026.03.31

가뭄

강릉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왔다. 비가 계속 안 오더니 급기야 강릉시내의 아파트에 급수를 제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치가와 언론들이 신났다. 이럴 때 나서면 뭘해도 스폿라이트를 받거든. 그런데 주문진은 예외다. 강릉시에 속하는데도, 정작 가뭄의 피해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생활용수의 취수장이 다르단다.강릉시는 오봉저수지에 의존하지만, 주문진읍은 연곡취수장이라는 데서 물을 공급받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 가뭄 속에서도 급수 제한이라든지 식수 공급 등의 힘든 과정을 겪을 일이 없었다. 그 가뭄이 9월말에 들어서야 해결되었다. 주말마다 비가 몇 번 오더니 오봉저수지의 물이 웬만큼 찼단다. 10/1부터는 수영장도 다시 개장한다고 한다.거의 두달 반이 걸렸다. 한반도가 작은 땅덩이리인데도, 동일한 ..

주문진해수욕장

8월 하순으로 접어드니 관광객의 수가 훨씬 줄었다. 해수욕장도 꽤 조용한 편이다. 다른 사람들과 대략 50미터 정도의 사이를 두고 자리잡을 수 있다. 유료 샤워장 같은 것도 없어져 조금 불편하지만, 그와 동시에 각종 상인들도 사라졌다. 이게 바다지. 매일 해수욕장에 가서 두어시간씩 바다에 몸을 담갔다. 섭씨 33도를 넘는 폭염인데도, 바닷 속에만 들어가면 온몸이 시원하다. 바다에서 나와 해변에 앉아만 있어도, 계속 바닷바람이 알맞게 불어와 더운 줄을 모르겠다. 이렇게 한가롭게 해수욕을 해본 게 얼마만인가.. 생각하다보니, 이게 처음인 듯 싶다. 학교 다닐 때는 물론, 아주 어릴 때에도 바닷가에 와본 일은 없는 것 같다. 십여년 전에 아내와 함께 대천해수욕장에서 몇시간 지낸 적은 있는데, 여행중이라 그..

강원도립대학

근처에 강원도 도립대학이 있다. 저녁에 대학구내 또는 운동장 트랙을 걷기에 참 좋다.봄 여름엔 산책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걷거나 뛰기도 하고, 주변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아내와 함께 조용한 대학구내를 걷다보면, 대학 전체가 참 평화롭게 느껴진다.고즈넉하고 사람도 별로 없고. 어둠 속에 벤치 곳곳에서 동네사람들이 두 셋씩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왠지 이 밤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한다. 얼핏 보기에 2, 3층 건물로만 이루어진, 자그마한 학교다.학교에서 허용해주기만 한다면 공짜 강의를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며칠간 걷다보니 대학 내에 일반에게 공개되는 수영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드디어 가보았는데, 시설이 너무나 좋다.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