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세컨드 하우스

밤바다

fotovel 2026. 8. 15. 14:39

요즘 동풍이 불면서 동해안은 영서지방이나 수도권보다 기온이 5 내지 6도 가량 낮다.

열대야도 없어진 덕분에 상대적으로 부요해진 느낌까지 든다.  

밤이 되자 기온이 조금 더 떨어졌다. 23도. 

아내와 강원도립대학의 교내를 산책하다가, 내친 김에 해변까지 걷기로 했다. 

 

바다가 가까워져 오자 파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요즘, 해수욕이 금지될 정도로 파고가 높다던데, 밤에는 어떻게 보일지 약간 궁금해졌다. 

밤에 보는 바다는 낮과 사뭇 다르다.

먼 바다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잔뜩 흐린 날이라 달도 구름도 없다.  

파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먼 밤바다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흑암같은 바다 속에서 위장하며 다가오던 파도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삼각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이내 꼭대기에서 하얀 물보라를 드러낸다. 

마침 어제 읽은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 흰 이빨같은 파도가 무섭게 이를 드러내고 있는 차디찬 바다. 

정말로, 육지로 다가오는 파도의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물보라는 엔도 슈사쿠의 표현대로 "흰 이빨"처럼 보인다. 

그 이빨들은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길고 날카롭게 늘어났다가, 해변으로 기어오르면서야 거품만 내뱉은채 사라진다. 

그것들은 순차적으로 밀려오면서 천둥같은 소리를 낸다.

대화가 어려울 정도의 소리를 지르면서 일제히 다가온다. 

갈퀴같기도 하고 이빨같기도 한 파도들은 때로 마귀의 날개처럼 무섭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천사의 찢어진 옷처럼 비참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떤 파도들은 모래사장의 둔덕 위로까지 올라왔다가 애타는 갈퀴처럼 모래를 긁으면서 물자국을 남긴다.

멀리서 다가오면서 꽤나 높아보이던 어떤 파도는 모래사장의 둔덕을 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파도는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았는데 끝내 둔덕을 넘어오기도 한다. 

 

아내와 함께 해변가 벤치에 앉아서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파도멍을 때렸다. 

파도너머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칠흑같이 검다.

저기까지 밀려간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가끔씩 비릿한 냄새가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동해바다에서는 서해나 남해바닷가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비릿한 향이 잘 느껴지지 않는데, 오늘 밤은 다르다. 

높은 파도들은 바다냄새까지도 싣고 오는 걸까. 

 

해변에 있던 몇몇 소년들이 폭죽을 터뜨린다. 

단조로운 폭죽들이지만, 그나마 검은 바다와 굉음의 무서운 파도 위에서 화려한 불꽃을 수놓는다. 

폭죽의 불꽃들은 잠깐 번쩍였다가 밤하늘 가운데서 수많은 작은 이빨처럼 변한뒤 순식간에 사라진다.

선선한 여름밤, 주문진의 밤바다는 그렇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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