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 시기리야 사자성
시기리야.
사자성 또는 사자바위라고도 불리우는 이 곳을 찾아 먼길을 달려왔다.
국내에서는 항공사 광고때문에 더 유명해졌지만, 그만큼 독특한 곳이기도 하다.
오전 10시쯤 되었는데, 날은 벌써 몹시 덥다.
바위산만 있는 게 아니라 왕궁 터 여기저기에 볼만한 것이 좀 있는 편이다.
얼핏 앙코르와트 사원들 중 일부 같은 느낌도 난다.
규모는 작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카사파왕.
도망치듯 이 곳까지 와서 왕궁을 세웠다고 한다.
그의 마음이 편안했을까.
이복동생 목갈리야는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남인도로 도망쳤다고 한다.
후일 목갈리야는 남인도에서 군대를 이끌고 여기까지 와 카사파왕을 정벌한 후, 아누라다푸라로 왕궁을 옮겼다.
그 이후부터, 이 곳은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죄많은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기에, 스리랑카인들은 이 곳을 잊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다.
가파른 층계도 무지 많고.
끝까지 올라간다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사자산을 올라가다가 중간쯤에 있는 동굴에서, 그 유명하다는 벽화를 본다.
그들은 왜 여인네들의 가슴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그렸을까.
오직 카사파왕의 취향을 맞추기 위함이었을까.
열대과일과 스리랑카의 특산물이라는 사파이어가 그림 속 곳곳에 있다.
채색과 여인들의 표정이 당시의 넉넉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왕궁 입구에는 사자발톱 조각이 있다.
사자가 엎드린 모습이라나.
발톱이 꽤나 날카로와 보인다.
스리랑카인들은 사자의 자손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한다.
그들의 국기에 사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그런 의미인가보다.
사자산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카사파왕이 바로 저 바위에서 떨어져 자살한 것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평원에 우뚝 선 사자산이 왕궁으로 존재했던 세월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모두 덧없는 것이 되었다.
카사파왕이든, 평범한 우리네든, 모두가 세월 속의 짧은 그림자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