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돌아다니기

약수동 추억 찾기

fotovel 2015. 11. 2. 18:07

약수동 로터리를 뒤덮고 있던 고가도로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기 위해 그곳으로 가볼 생각이 들었다. 

 

약수동, 거기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다. 

지금은 참 복잡한 거리가 되었다. 전철역도 있고. 

 

로터리에서 옛집을 찾아가는 골목길은 참 좁았다. 

참 넓은 길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 속에서 살랑거린다. 양쪽에 꽤 부잣집들만 죽 늘어서 있던 길이었다. 그 부잣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 세간을 저 길 담벼락 밑에 쌓은채 밥을 해먹고 있는 장면도 기억이 난다. 그 땐, 그게 그렇게 희귀하지는 않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집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 대신, 하늘을 가리는 4, 5층짜리 건물들이 들어섰다.      

 

 

위 사진의 가운데 건물 오른쪽으로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오른쪽 골목은 개천을 건너가면서 나 있던 길이다. 

그 개천은 사라졌다. 

그래.. 개천을 덮으면 땅이 되니까...

 

저 가운데 건물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사람들은 "옥미네 가게"라고 불렀다. "옥미"라는, 내 나이 또래의 딸애를 둔 부부가 운영했다.상냥하고 착한 부부였는데, 나는 그 옥미라는 애와 부딪칠까봐 그 가게에 잘 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수줍었을까. 

 

 

 

 

 

 

개천 건너편 뒷 골목을 따라 가보았다. 

옛 자취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윽고, 우리 집이 있던 자리가 나왔는데... 우리 집은 흔적도 없다. 모두가 연립주택으로 변해버렸다. 
저녁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파란 연기가 피어올랐다.국수 삶는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하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모래장난을 하던 코흘리개 일구도 콧물을 훔치며 집으로 달려갔다. 모두 판자집같은 집이었다. 지붕은 "루핑"이라고 부르는, 꺼먼 비닐로 덮은 집들이었다.그것들이 모두 아름다운 추억인데..    

 



약수동 로타리로 다시 나와서 어슬렁거리다보니, 지하철역 입구에 소녀(?)의 동상이 하나 있다.


얼핏보아 담배불 붙이는 듯한 모습처럼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담배를 피우려 하는 것같지는 않다.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려 했을까. 

 


허전함과 궁금함만 남긴 옛 동네를 떠나 장충동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약수동 일대를 내려다보는 언덕길에, 전깃줄이 몹시 복잡하게 얽힌 전봇대가 서있다.


30년 넘는 세월동안, 이 동네 살던 사람들의 사연은 더 복잡하게 얽혔으리라.  

 

 

언덕길을 넘으니 장충교회와 장충단공원이 보인다. 

 

 


이 교회도 요란한 건물을 세웠다. 강남 어떤 교회만큼이나 멋부리고 싶었나보다.  소박한 건물에서 참된 예배드리는 게 좋겠다는 건, 개인적인 의견일뿐이겠지.  
어릴 때, 장충단공원에 자주 갔었다. 공원이라고는 불렀지만, 그 때에는 아무 시설도 없었다. 

지금은 놀랄만큼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다. 

"장충단공원"이라는 명칭이 이렇게 큼직하게 씌어 있다니.   

 


공원 사이사이에는 시냇물을 이용해 충분한 숲공간을 만들었다.예쁘다.   


더 내려오다보니, 그 옛날 어린 시절 한동안 다니던 교회가 있다.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지만, "날좀 보소"하는 천박한 자랑거리로 보여지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정성을 다한 돈으로 건축헌금을 낸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인지, 더 정이 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고 돌아오는 길이 참 싱그럽다.